#Remember No.40
야구장에 종종 직관을 오더라고요. 은퇴 후에도 KBO리그 경기를 자주 챙겨 봤나요?
TV로는 스포츠를 안 봅니다. 선수 때도, 만약 다음 경기가 KIA전이면 이전 KIA전 영상들을 돌려보는 정도였습니다. 야구든 농구든 축구든 TV로 보면 지루하더라고요. 가끔 제가 일하는 아카데미나 광교 세인트폴의 학생들을 데리고 야구장엔 갔습니다. 구장에 가면 그때가 그리워서 다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어쨌든 TV로는 지루해서 안 봅니다.
사실 두산에서 KT로 갑자기 이적하게 됐을 땐 기분이 다소 상한 듯 보였어요.
에효… 두산이 저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수년간 두산을 떠날 수 있었는데도 충성심으로 팀에 남았습니다. 근데 2017시즌이 끝난 후 그들이 갑자기 등을 돌려서 화가 났습니다. 그해 14승을 했고 나쁜 시즌을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두산이 또 한 번 우승에 도전하는 해에 한국시리즈에서 미끄러졌으니 실망했을 법도 하죠. 하지만 저와 계약하는 부분에 대해선 분명 더 나은 방식이 있었을 겁니다. 제가 7년 동안 두산에서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면 경우가 없다고 느껴졌죠. 차라리 저한테 이유라도 제대로 설명해줬으면 받아들였을 텐데, 아무런 연락도 없는 상태에서 두산이 다른 외국인 투수 2명과 사인했다는 사실을 기사로 접했습니다. 마치 저한테는 자격도 없다는 듯이 말이에요. 반면 KT에는 정말 감사했어요. 그들은 제가 계속 선수로서 팀에 이바지하도록 해줬으니까요. 솔직히 이적 후 첫 번째로 두산전 경기를 나갔을 땐 두산을 무조건 이기고 싶었습니다. 물론 옛 동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길 바란 건 절대 아니지만, 그땐 두산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나 있어서 두산이라는 팀이 그냥 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어요.
그때 이후로는 관계가 어떤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그땐 그랬지만 몇 년이 지나니, 마치 흘러가는 강물처럼 좋은 관계로 돌아왔다고 느낍니다. 동료들이든 통역이든 그때 저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제가 도움을 요청하면 발 벗고 나서 줄 사람들이거든요. 단지 KT로 이적하던 해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뿐입니다.
양의지가 올해 두산으로 돌아왔는데, 연락을 나눴나요?
아마 아카데미 학생들과 갔던 거 같은데, 지난해에 NC전을 한번 보러 갔습니다. 그때 경기가 끝나고 의지랑 대화를 나눴는데,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된다고 그랬죠. 그래서 제가 ‘헤이, 두산으로 돌아가는 건 어때?’하고 놀렸거든요. 그때 의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웃기만 했습니다. 근데 겨울에 예전 통역이 의지가 두산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제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의지한테도 두산으로 다시 간 걸 축하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우리가 두산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보니 의지가 두산으로 돌아가서 기뻤어요.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의지는 저한테 무척 특별합니다. 아마 그를 보면 함께 뛰었을 때가 생각나겠죠.
올해 시구자로 나서고 양의지가 그 공을 받으면 굉장히 의미 있겠네요!
좋아요, 재밌겠네요. 대신 사람들이 제가 의지 덕분에 KBO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여야… (니퍼트는 답을 멈추고 한동안 눈물을 보였다.) 왜냐면 그는 오랫동안 제 포수이기도 했고, 제 프로 선수 인생 마지막 투구가 끝났을 때 마운드에서 내려와서 그와 포옹했거든요. 그때가 자꾸 떠올라서 이래요. 제 커리어는 그 포옹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죠.
수많은 야구인이 니퍼트를 칭송하는데, 스스로 돌아봤을 때 어떤 선수였다고 생각하나요?
모두 제 동료들 덕분입니다. 전 테니스 선수도, 골프 선수도, 복싱 선수도 아닙니다. 팀에 소속된 야구선수였죠. 동료들이 절 돕지 않았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최고의 선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제가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했으니까요. 저는 그저 행운아였을 뿐이에요. 만약 제가 다른 구단과 계약하거나 선수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면, 혹은 의지 말고 다른 포수를 만났더라면 아마 많은 것이 달라져서 성공한 선수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곽빈, 박신지, 최준호 등 니퍼트를 롤 모델로 삼으며 입단한 선수들도 있는데, 자신을 본받고 싶어 하는 그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우선 그들이 저에 대해 그렇게 말해준 건 멋진 일이네요. 그런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야구를 얼마나 오래 할지 모르니까 유니폼을 입고 뛰는 오늘을 특별히 여겨야 한다는 겁니다. 내일은 보장되지 않으니까요. 오늘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 오늘 체육관에 가는 것에 후회 없이 모든 걸 바치면 좋겠습니다.
KBO리그 레전드 40인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외국인 선수로서는 아주 특별한 일이겠어요.
그런 이벤트가 있다고 처음 들었을 땐 제가 선정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전설적인 한국 선수들이 이미 많았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타이론 우즈와 저, 이렇게 두 명만 외국인 선수인데, 쟁쟁한 4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저를 뽑아주셔서 무척 영광입니다.
은퇴 후 두 차례 시구를 했는데, 마운드에 오를 때 선수 시절이 그립지는 않았나요?
이젠 야구장에 가면 주로 아이들과 관람을 합니다. 하지만 시구할 때처럼 그라운드로 내려갈 일이 있으면 야구장의 잔디 냄새와 마운드의 느낌, 그곳에서 보이는 팬들이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줘요. 맞아요, 남은 삶 동안 그리워하겠죠.
아직도 지도자 생각은 크게 없는지 팬들이 무척 궁금해합니다!
하하.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준비가 안 됐어요. 코치가 되면 시간을 정말 많이 할애해야 하는데, 그걸 감당할 자신은 아직 없습니다.
자신의 선수 시절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장면이나 순간을 하나 뽑아보자면 언제였나요?
유니폼을 입었던 모든 순간이 그랬습니다. 돌아보면 운이 좋아서 그렇게 오래 뛸 수 있었죠. 그래도 2015시즌에 우승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해 제가 어깨를 다쳐서 두산이 절 집으로 보낼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두산은 가을야구를 준비하는 팀이었고요. 근데 제가 얼마나 오래 결장할지도 모르는 와중에도 두산은 절 믿고 계속 쓰기로 해줬습니다. 덕분에 얼마 뒤 복귀해서 팀이 우승하는 데 큰 보탬이 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가 제겐 매우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만약 과거를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후회되는 순간이 있는지 묻는 거군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2018시즌을 끝내고 그때보다 더 노력할 겁니다. 한국이 아니더라도 대만이든 어디든 가서요. 그리고 아내도 늘 같은 얘기를 하곤 해서 지금 앞에서 웃고 있네요. 아무튼, 야구에 좀 더 매달려야 했는데 그때 그냥 포기해버린 게 후회됩니다.
나에게 야구란 어떤 존재인가요?
Everything. 야구는 모두가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든 노인이든 상관없죠. 그래서 야구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하게 해줍니다. 심지어 선수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까지 그들의 야구를 선보이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그런 야구가 절 살아가게 해준 전부예요. 제가 야구선수가 아니었다면 과연 뭘 했을까요. 수많은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준 야구는 제게 전부와도 같습니다.
니퍼트를 그리워하는 야구팬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마치겠습니다.
두산 팬, KT 팬을 포함한 모든 야구팬에게 감사합니다. 요즘 거리에서 제게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시는 팬분들이 ‘저 삼성 팬이에요’, ‘저는 롯데 팬이에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모든 팬분이 다 소중합니다. 비록 제가 상대 팀의 투수였더라도 저를 한 명의 야구선수로서 존중해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