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DUGOUT People] 한화 이글스 정우람 DUGOUTV

dugout*** (dugout***)
2017.06.23 17:51
  • 조회 4208
  • 하이파이브 2


undefined

 

세이브를 하려는 자, 공 하나의 무게를 견뎌라.

 

경기를 시작할 때의 공 하나와 경기를 마무리 짓는 공 하나의 무게감은 과연 같을까?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실투 한 개로 자칫 경기가 끝나버릴 수도 있는 마무리 투수가 느끼는 중압감은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는지. 자신이 던지는 공 하나에 모두가 기다리는 팀의 승리가 걸려있다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정우람은 프로 입단 후 줄곧 그런 승부처를 겪어온 투수다. 항상 터프한 상황을 견뎌내는 우리의 우람신, 세이브 상황만큼이나 쫄깃쫄깃한 정우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성지현 Location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_UG_2934.jpg

 

 

 최고 불펜, 최고 대우를 받다. 

 

정우람은 경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4년 2차 2순위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한다. 2005년에 1군 첫 데뷔를 경험한 이래 2008년부터 점점 불펜 투수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우승도 경험하며 찬란한 SK 왕조의 시대를 열게 된다. 꾸준히 리그 최정상급의 불펜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프로 생활을 시작한 팀, 같은 영광을 누렸던 팀, 10년 넘게 정든 팀을 떠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다.

 

“정이 많이 들었었어요. SK를 나오면서 동료들, 익숙했던 사람들 그리고 팬들을 떠난다는 생각에 짠하기도 했던 거 같아요. 여길 떠나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조금 있었고요. 가족들과도 떨어져서 타지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을 좀 했었죠.”

 

2015시즌을 마치고 4년 84억 원의 금액으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어요. 불펜투수 역대 최고액 계약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요?

최고액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부담감보다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거 같아요. 그만큼 제 가치를 인정해주신 거니까요.

 

한화로 이적한 후 달라진 게 있을까요?

SK에 10년 정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안주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나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라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없어졌던 거 같아요. 한화로의 이적은 그런 매너리즘을 깨고 나를 더 다그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한화에 오고 나서 마무리로 이전보다 더 많은 공을 던지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달고 있던 자잘한 부상들과 여러 가지 시련을 이겨내고 정신적으로도 더 새롭게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화 이적 후 평균 구속이 2~3km/h 올랐다는 통계가 있어요. 알고 있었어요?

네. 그런 통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도했다기보다도 군대 2년 갔다 오고 제대한 이후 1년 정도 SK 있을 때, 경기를 할 수 있는 몸의 준비라던가 제가 생각했던 감각이 조금은 없었어요. 그랬던 것이 경기를 나가면서 서서히 회복되고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자신감이 생겨났어요. 사실 손톱이나 어깨가 조금 문제가 있었는데 관리를 잘했고, 그런 부분이 좋아지면서 구속이 증가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군대 생활 2년간 어깨를 쉬게 한 것도 영향이 있었을까요?

쉰 게 영향이 있긴 있었어요. 그런데 쉬었다고 그게 바로 구속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요. 경기 감각의 문제도 있고요. 한화에 온 뒤 김성근 감독님을 다시 만나면서 그동안 안주하고 익숙하던 부분을 깨서 저를 채찍질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성장, 그리고 스승

 

누구나 성장 과정을 겪고 그 와중에 스승을 만나 많은 걸 배우고, 발전한다. 야구공을 쥐고 잘 정도로 야구가 잘하고 싶던 청년은 자신의 멘토를 만났고, 많은 것이 변했다.

 

2008년 방영된 ‘불타는 그라운드’라는 프로그램에서 잘 때 체인지업 그립 잡고 잔다는 인터뷰를 했어요. 혹시, 지금도?

지금은 안 그래요. (웃음) 그때는 야구에 대한 열망이 조금 강했고, 나이도 어렸고, 욕심도 많았어요. 팀 성적도 굉장히 좋아서 ‘이 팀에 이렇게 야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시기에 나도 같은 일원이 돼야겠다’라고 느꼈죠. 그래서 혼자 있을 때 특히 야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잠잘 때 쥐고 잤던 것도 그런 부분의 일환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절대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웃음) 다만 심리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믿고 있어요.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불펜 투수 혹은 마무리를 꿈꿨어요?

딱히 그렇지는 않았어요. 처음 야구 시작했을 때는 프로에 가는 게 꿈이었어요, 프로에 와서는 1군이 꿈이었고요. 1군에서는 1군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김성근 감독님 오신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어요. 야구를 하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막 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내가 야구를 잘해야겠다’ 그런 열정을 갖게 해 주셨죠. 처음 SK에서 김성근 감독님이 오셨을 땐 보직이 불펜이었거든요. ‘선발로 가기보다는 지금 불펜을 하고 있으니까 불펜에서 조금 더 두각을 나타내고 인정받는 선수가 되자’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거 같네요.

 

인터뷰 하다 보니 김성근 감독님에 대한 정우람 선수의 존경심이 느껴져요. 정우람에게 김성근 감독님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김성근 감독님은 제가 야구를 하면서 기술적인 측면보다도 ‘어떤 야구선수가 돼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야구를 해야 되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해주신 분이에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게 해주신 것과 제가 거기에 보답하고, 부합하는 것은 별개잖아요. 결국에는 말씀을 듣고 내 자신이 바뀌어야 하는 거니까요. 항상 생각하고 감독님 말씀을 새겨들으면서 어린 시절에 열심히 하고자 했던 게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가를 대표하여

 

리그 최정상급의 불펜 투수, 더 나아가 몸값으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은 그이지만 유독 국가대표와의 인연은 그리 질긴 편이 아니었다. 2008년부터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정우람은 201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국가대표에 충분히 뽑힐만한 실력과 성적이었는데, 아쉽지는 않았어요?

서운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기술위원회 분들은 다들 전문가시고 야구에 대해서 저보다 훨씬 잘 아시는 분들이잖아요. 오래 하시기도 했고요. 국가대표 뽑히기에는 제가 아무래도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했죠. 오히려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계기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어요! (2015년 WBSC 프리미어12) 그런데 첫 국제 대회에서 극적으로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어요. 그때의 심정이 어땠나요?

처음 나간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으니까 더할 나위 없이 기뻤죠. 일본을 꺾었다는 것도, 전력이 약하단 평가를 뒤집고 우승했다는 것도요.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고요.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가족들이 기뻐해 줘서 그게 너무 좋았어요.

 

_UG_2945.jpg

 

 

 2017, 정우람의 선택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여러 가지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연이은 진지한 얘기로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던 상황. 주제를 고민하던 에디터는 가족 이야기를 던졌다. 특히 아들 얘기를 하니 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슬하에 대한 군, 민후 군. 두 명의 아들이 있어요. 가족 얘기가 나온 김에 아들 자랑 한 번 가시죠!

아직 어리긴 하지만 흠잡을 데가 없어요. 아빠 말도 잘 듣고요. (흐뭇) 더 이상 뭐 엄마아빠가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대견스러워요. 앞으로 안 아프고 건강하게만 잘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아빠미소)

 

만약 아들이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떨 거 같아요? 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강제로 야구를 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만약에 진짜로 하고 싶다고 하면 한번 생각은 해볼 거 같은데 아직은 딱히 생각이 없네요.

 

상황을 한 번 더 가정해보죠. 아들들이 아빠를 보고 불펜 투수나 마무리가 너무 멋있다고 아빠 같은 불펜 투수가 되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일단 봐야죠. 싹수가 보이는지. (웃음) 이놈이 될 놈인지 안 될 놈 인지를요. (웃음)

 

정우람 Jr들의 선택이 정말 궁금해지네요. 지금부터는 조금 스피디하게 가볼게요.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바로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9회말 2사 만루! 한 점 차 박빙의 투 쓰리 풀카운트 상황입니다. 자, 정우람 선수가 선택할 단 하나의 구종은?

음… 몸 쪽 꽉 찬 직구요! 볼은 되면 안 되니까 최대한 비슷하게 치라고 던져야죠. 물론 그게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는 던져봐야 아는 거지만요. 일단은 들어간다 생각하고 과감하게 몸 쪽 승부를 들어갈 거 같네요.

 

그렇게 몸 쪽 승부가 들어갔는데 타자가 삼진을 당했어요! 이 때 헛스윙 삼진과 루킹 삼진 중 더 기분 좋은 삼진은?

헛스윙 삼진이 아무래도 더 기분이 좋죠. 타자를 뭔가 이겼다는 느낌이 조금 더 든다고 해야 할까요. 내 공이 더 위력이 있어 보이는 느낌?

 

이번에는 주자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볼넷 vs 피안타 무엇이 더 기분 나쁜가요? 하나, 둘, 셋!

볼넷! 이건 볼넷이 더 기분 나쁘네요. 가끔은 피안타가 더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긴 한데 대부분 볼넷이 기분이 나빠요. 아, 물론 장타는 예외입니다. (웃음) 어느 상황에서건 장타는 맞으면 안 되죠.

 

_UG_2957.jpg

 

 

이 쯤 되니 짜장 vs 짬뽕, 부먹 vs 찍먹도 심히 물어보고 싶지만, 지면 관계 상 넘어가겠습니다. (웃음) 정우람 선수하면 특유의 셋 업 모션이 굉장히 유명해요. 셋 업 모션도 본인이 고르고 정립한 건가요?

네. 셋 업 모션, 제가 만든 거예요. 제 신체에 맞게요. (거울 같은 거 보면서요?) 그렇죠.

사실 그렇게 추천하고 싶은 폼은 아니에요. 힘이 많이 들어가고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폼이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부담이 덜하니까 저한테 맞는 거 같아요. 일반사람한테는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던지는 사람 거의 없잖아요. 저도 제 폼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이렇게 던져야 제 몸이 편하고 힘을 쓸 수 있어요. 제구나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지고요.

 

자신만의 고유폼, 때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거 같은데요.

저는 멋있다고 절대 생각 안 합니다. (단호)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고유한 폼이 있다는 건 선수로서 바람직한 일이라고는 생각해요.

 

팀 후배인 김범수 선수가 정우람 선수의 폼을 따라 한다고 하던데….

그렇게 비슷하진 않아요. 범수는 그리고 자꾸 바뀌어요. (웃음) 어서 자신만의 것을 찾았으면 좋겠네요.

 

고유폼과 더불어 농군 패션도 정우람 선수의 시그니처로 유명해요. 특별히 농군 패션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연습 때는 긴 바지를 입기도 해요. 농군 바지는 일단 뭔가 쪼여주는(?) 게 있어요. 조금 더 집중하게 만들어준다고 할까요? 다리 올릴 때 조금 더 편하고요. 음… 말로 딱 ‘이거다’ 하고 표현하기는 좀 어려운데요. 뭐랄까,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긴 바지는 좀 헐렁하고 덜렁덜렁거리는 느낌? 뭐, 실제로 특별한 차이는 없겠지만 심리적인 부분이 크지 않을까요? 농군 입고 옛날에 잘해서 그 이후로 쭉 이어진 거일 수도 있고요. 어쩌면 일종의 저만의 루틴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Tough Memory 

 

실투하나에 동점 내지는 역전이 가능한 순간. 터프세이브의 상황은 짜릿하다. 하지만 그만큼 팀의 승리를 지키지 못 했을 때의 아픔도 클 터, 항상 승부가 걸린 중요한 상황을 견뎌내는 그의 감정이 궁금했다.

 

투수로서 흔히 접하기 힘든 상황 얘기를 먼저 해보려 해요. 2012년 한화와의 경기였어요. 타석에 들어섰는데 기억나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딱히 뭐 별다른 생각은 안 들었어요. 왜냐하면, 다음에 투수로 마운드에 계속 올라가야 했으니까요. ‘안타를 쳐야겠다’, 내지는 ‘살아나가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고등학교 시절에 나름 맞히기는 잘했으니까 ‘한번 맞혀 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죠.

 

그래서 진짜로 맞히셨죠. (웃음) 그런데 하필 그 타구가 병살타가 됐어요.

맞아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이닝에 (최)정이가 홈런을 친 거예요. 정이한테 굉장히 미안했죠. 타점을 날린 셈이니까요. (웃음)

 

쉽게 상상은 가지 않지만, 얘기를 듣다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고등학교 때 정우람은 어떤 타자였어요?

딱히 콘택트를 잘하고 파워가 있는 좋은 타자는 아니었어요. 그냥 잘 갖다 맞히는 정도의 타자? 딱 그 정도였던 거 같아요.

 

_UG_2929.jpg

 

 

혹시 지금에라도 타격 욕심은 없나요?

네? 타자요? 지금요? 전혀요. (웃음)

 

조금은 아플 수도 있는 질문 하나 할게요. 그동안 가장 뼈아팠던 블론세이브 순간은 언제였어요?

한화 와서는 음…. (혹시 가장 최근인 5월 3일?) 뭐, 지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때이긴 하네요. (정무룩) 그래도 그 날은 팀이 이겨서 다행이었죠. 그때 당시에 딱 드는 생각은 우선 팀에 미안해요. 승리 투수에게도 미안하고요. 하지만 빨리 벗어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다음 경기에 갚을 수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사람인 이상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 굉장히 속상할 거 같은데, 이런 경우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나요?

물을 조금 많이 먹어요. 왜냐하면, 생각이 많아지니까 잠을 제대로 못 자거든요. 물을 막 계속 먹으면서 열 올라온 걸 조금 내리려고 하는 거죠. 확실히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 너무 많이 드시면 중간에 잠 깨진 않아요?) 저는 중간에 잠 깨기보다는 아침에 양이… 허허허허. (부끄) 그 외에는 나가서 친구들과 가볍게 얘기를 나누면서 간단히 술 한잔하기도 하고, 아! 샤워를 조금 오래 하는 편이에요. (다시 한번 정우람의 선택! 찬물? 더운물?) 둘 다요! 번갈아가면서 샤워를 해요. 피로 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생각 정리도 수월해지는 것 같고요. 그날 있었던 일들은 가급적이면 그날 생각을 다 하는 편이에요. 빨리 잊어야지 하는 것보다도 왜 그렇게 됐나 반성하면서 저 자신을 좀 더 몰아붙이고 그날 다 끝내려고 노력해요. 비록 그 순간 자체는 조금 힘들지라도요. 그런데 사실 마음먹은 것처럼 그게 잘 되지는 않죠. 그런데 억지로 감정을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음날에 나가서 잘 던지면 금세 잊혀요.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중요한 거는 다음날 잘 던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다음날이 되었는데 팀이 연패로 간다, 그러면 그게 제일 야구하면서 힘든 순간이 돼요.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세이브도 궁금해요. 혹시 그것도 가까우니까 최근 경기일까요?

아뇨, 아뇨. 개인적으로는 한화 와서 첫 세이브 할 때가 제일 기뻤던 거 같아요. 그때가 마산 NC 다이노스 원정이었고요. 팀을 옮기고 첫 스타트, 첫 세이브 상황이었어요. 딱 세이브를 기록하고 나서 ‘아, 내가 이제 한화의 일원이 됐구나’라고 느껴져서 특히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이브를 기록할 때의 기분은 어때요? 굉장히 짜릿할 거 같은데, 프로선수들 중에서도 몇 명밖에 느낄 수 없는 기분이잖아요.

그렇게 막 굉장히 짜릿하다. 이런 감정보다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저도 당연하게 해야 할 거로 인식하고 세이브 했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을 했구나’ 이 정도의 느낌?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요. 그냥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것처럼 어느덧 저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라고 하고 싶네요.

 

2016시즌 기대에 미치지 못 한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하지만 기록을 놓고 보면 커리어 평균에 가깝고 이닝 수는 오히려 평균보다 많았거든요. 이런저런 안 좋은 평가가 속상하지는 않나요?

아뇨. 그런 평가는 당연한 겁니다. 저 역시도 제가 생각한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요. 팀 성적도 좋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평가는 제가 프로선수로서 당연히 가져가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_UG_2959.jpg

 

 

 마무리의 이름으로 

 

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는 클로저, 소방수, 수호신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며, 다양한 면모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리라. 어느덧 프로 14년 차.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인 그에게서 한 팀의 마무리로서의 품격이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

 

2012년부터 본격적인 팀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어요. 불펜 투수와 마무리,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큰 차이는 없는데 불펜 투수는 일단 뒤에 다른 투수가 있죠. 불펜 투수의 경우는 내가 조금 힘에 부치더라도 내 뒤에 올라와서 더 힘 있는 공을 뿌려줄 수 있는 마무리가 있어요. 하지만 마무리는 일단 내가 끝내야 된다는 거. 그런 마음가짐. 그 차이인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무리할 때 힘이 조금 더 많이 들어가는 편이고요. 성취감 측면에서도 마무리가 경기를 끝냈을 때 좀 더 좋아요.

 

공 회전수가 리그 정상급이라는 통계가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많은 삼진을 잡아내는 거로도 유명한데요. 정우람 선수의 악력이 세서 그런 걸까요?

악력이나 공을 채는 게 특별히 좋아서 그렇다기보다 팔 스로잉 동작에서 차이가 나는 거 같아요. 제가 기존의 다른 투수들에 비해 쓰리쿼터로 공을 끌고 나와서 던지는 스타일이라서 회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일부러 그렇게 의도하거나 만든 건 아니고요.

 

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로서 공 회전수 외에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제가 특별히 장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그냥 그때그때 내가 할 준비를 제대로 하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하는 건 지난 일은 빨리빨리 잊고 내일의 게임에 집중하고자 하는 태도로 노력하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한 마음가짐이 결과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태도와 마음가짐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거 같아요. 마무리 투수로서 부담감이 상당할 텐데, 이런 부담을 극복하는 자신만의 멘탈 관리 비법이 있을까요?

미리 머릿속에 다가올 상황을 그려봐요. 경험이 쌓인 만큼 이제 부담감은 전혀 없어요. 다만 긴장감은 조금씩 오는 편이죠. 그럴 때일수록 어떤 상황인지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고 한번 생각해보는 게 평정심 유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마무리 투수는 강심장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때요? 본인이 강심장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제가 강심장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프로선수라면 누구든 그 정도의 자질과 멘탈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요. 그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유지하자고 계속 되뇌는 편이에요. 계속해오던 것. 그걸 통해서 여기 이 자리까지 온 거니까요. 평소에 안 좋은 생각은 최대한 조금 하려고 하고 잘했을 때의 생각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거를 보여주자, 그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내가 가진 걸 중요한 상황에서 전부 보여주려면 준비를 평소에 잘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죠.

 

_UG_2961.jpg

 

 

평소의 준비에 굉장히 철저하시네요. 경기 준비 과정에 특히 예민한 선수들도 있는데, 정우람 선수는 어때요? 본인만의 루틴이나 징크스가 있나요?

크게 없는데 음…. 잘 생각해보니까 되게 많네요. 그런데 사실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에요. 이를테면 신발 끈 매는 방법, 어떤 타이밍에 준비를 시작해야 되는가, 시합 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야 되는지, 게임 전에 운동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식습관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같은 것들요. 전부 얘기하려면 아마 밤새야 할 거 같은데요. (웃음) (그중에서도 특이한 게 있다면요?) 아! 아침에 피를 보면 안 되는 거요. 아침에 피를 보게 되면 그날 하루가 잘 안 풀려요. 피를 보는 거 자체를 정말 안 좋아하거든요. 어느 정도냐면 아침에 만약 코피가 나는 것 같으면 거울을 안 보려고 고개를 돌리고 눈 감고 닦을 정도에요. 생각해보니까 모습이 조금 웃길 거 같긴 하네요. (웃음) 매일 승부 속에 있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는 거 같아요. 별로 생각 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때도 있는데 진짜 예민할 때는 하나하나 다 지켜야 해요. 지금은 그나마 연차가 쌓이니까 그런 부분 많이 없어지긴 했어요.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하는 융통성이 조금은 생겼다고나 할까요.

 

경험이 쌓인 지금이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 또 있나요?

야구란 게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이제는 제 자신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해요. 어렸을 때는 발버둥치고 무조건 열심히 했다면 이제는 부상도 자주 올 수 있고 체력도 예전보다는 쉽게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부분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느끼고 있어요. 이제는 노하우가 좀 생긴 거죠. 예전에는 나를 몰아붙이기만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말이에요.

 

어느덧 연차가 쌓이고 관록이 느껴지는 베테랑의 면모가 돋보여요. 그러다 보니 기록도 쌓였는데요. 류택현 선수(전 LG 트윈스)가 가지고 있는 투수 통산 출장경기 기록(901경기)을 넘어 통산 1천 경기 출장이 기대되고 있어요. 이에 대한 욕심은 있나요? (정우람 2016시즌 후 661경기)

기록 경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걸 전혀 의식하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제가 안 아프고 최대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야구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기록이 남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프로선수는 팬들께 좋은 모습 보여 드리는 게 가장 우선이지 싶어요.

 

그래도 투수로서 달성하고 싶은 기록이 있지 않을까요?

달성하고 싶은 기록은 딱히 없어요. 기록이란 게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따라오는 거니까요. 욕심은 따로 없어요. 욕심이 있다면 팀 성적이 지금보다는 더 잘나왔으면 좋겠네요.

 

지금처럼 정우람 선수가 꾸준한 활약 보여준다면 팀 성적도 오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팀 성적이 오르면 함께 기뻐하실 팬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화 이글스 정우람입니다. 한화 팬 분들,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성원과 사랑을 보내주셔서 저 역시 마운드에서 더 큰 힘을 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비록 초반에 지금 성적이 팬들 기대만큼 나오지 않지만, 저희 선수들 하나로 똘똘 뭉쳐가지고 꼭 팬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시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항상 자신의 실력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투수. 이런 선수가 최정상의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마무리든 불펜이든 어디든 사실 보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늘 만나본 정우람의 모습이라면 어느 보직이든 자신의 역할을 120% 수행해 냈을 테니까.

 

자신을 다그치기만 하던 젊은 투수는 이제 경험을 쌓고 자신을 다독일 줄도 알게 되었다. 완급을 조절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때로는 터프하게, 때로는 느긋하게. 그렇게 정우람은 계속 빛날 것이다.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을 보여주면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던 영광스러운 기록들과 함께.

 

오늘 밤에도 정우람의 터프세이브를 기대한다.

 

 

 

74.jpg

더그아웃 매거진 74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7년 6월호(74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이파이브 2 공감하면 하이파이브 하세요!

댓글 0

한화이글스, 한화, 정우람, 우람신, 더그아웃매거진, 더그아웃

등급
답글입력
Top
등급
답글입력
  • 등급 닉네임 어쩌고
  • 2014.03.16 23:43
수정취소 답글입력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