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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감싸는 따스함
화풍난양(和風暖陽), 부드러운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라는 의미다. 치열한 야구 인생을 살아가는 서로를 이 사자성어처럼 훈훈하게 감싸주는 부자가 있다. ‘고교 포수 최대어’라는 수식어에도 노력을 게을리 않는 선수와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이끌어주는 코치. 이처럼 돈독한 사제 관계가 있기 전에 유별난 가족애까지 자랑하는 두 사람이다. 한 팀이라 더욱 특별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들 부자의 이야기를 세상에 소개하고자 한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Jinseok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엄형찬
출생 2004년 4월 24일 신체조건 183cm 83kg 출신교 성동초 - 덕수중 - 경기상업고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2022년 성적 6경기 타율 0.375 9안타 1홈런 4타점 2도루 OPS 0.990
엄종수 코치
출생 1973년 7월 9일 출신구단 한화 이글스 – 머틀 비치 펠리컨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아빠와 아들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엄형찬(이하 형찬)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기상고 3학년 포수 엄형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엄종수(이하 엄 코치) 경기상고에서 선수들과 함께하는 엄종수 코치라고 합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인사드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자가 함께하는 첫 인터뷰라고 들었어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형찬 그동안 인터뷰는 혼자 했었는데, 아버지와 같이하니까 좀 더 긴장되고 새로운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엄 코치 인터뷰는 물론 사진 촬영도 처음이라 엄청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부자가 한 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장점이 있을까요?
형찬 함께 생활하다 보니 세부적인 부분도 꼼꼼히 점검해주세요. 잘 되는 면도 증폭될 수 있게 옆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세요. 안 되는 요소도 계속 체크해주신 덕에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엄 코치 포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디테일이 중요해요. 투수 리드, 팀 조율과 같은 부분에서 알려줘야 할 게 많은데 상황마다 바로 조언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에요.
반대로 단점도 있나요?
형찬 글쎄요. 저는 큰 단점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엄 코치 저로서는 아들의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다 보니 조언을 계속하게 돼요. 듣는 입장에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싶어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의 팀 분위기가 가정까지 따라오는 일도 있겠어요.
엄 코치 야구장과 가정이 딱 나뉜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연습하다 보면 좋게 끝나는 날도 있고 반대로 감정이 상한 날도 생겨요.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가정으로 이어지게 돼요. 가능한 한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방법을 주로 사용하나요?
형찬 저희는 항상 밤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꼭 대화를 나눠요. 그 시간을 이용하려고 해요.
엄 코치 얘기를 나누며 제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아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서로의 의견을 들어주는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형찬이도 대화를 통해 부담을 덜어내는 게 보이고요.
아버지는 집에선 어떤 아버지고, 학교에선 어떤 코치님인가요?
형찬 집에선 장난도 자주 치고 친구 같은 아버지예요. 야구부에선 저희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선수 생활 경험이 바탕이 된 말이다 보니 많은 도움이 돼요. 야구뿐만 아니라 인생에 관련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는 코치님이에요.
반대로 아들은 집과 학교에서 각각 어떤 모습인가요?
엄 코치 저희 둘이 놀랄 정도로 성격이 비슷해요. 그래서 서로 부딪힐 때도 있고 친구처럼 막역하게 지내기도 해요. 팀 내에선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의지가 강한 선수예요. 제 잔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제자이기도 하죠.
#우승을 향한 여정
올해 첫 대회인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치른 이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듯해요. 요즘 부자의 일상이 궁금한데요?
형찬 첫 대회는 끝났지만 바로 주말 리그 등 다른 일정이 있어요. 계속 훈련하면서 준비 중이에요.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어요.
엄 코치 사실 이마트배 탈락 후 천안북일고의 우승 장면을 같이 봤어요. 굉장히 부러워하더라고요.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64강 율곡고와의 경기에서 5타수 4안타 1볼넷 4득점으로 대활약을 펼쳤어요.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형찬 사실 이전 라운드에선 부진했어요. 좋아지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죠. 떠올린 결론은 ‘1학년 때처럼 짧게 치고 살아나가자’ 였어요. 이 부분이 도움이 됐죠. 덕분에 배팅 감도 살아나 긍정적으로 풀린 경기였어요.
엄 코치 팀의 주축이기 때문에 다시금 활약해줘서 다행이었죠. 앞으로도 이렇게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올해가 경기상고의 전국대회 우승 적기가 될 거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요. 부담감은 없을까요?
엄 코치 학교 측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어요. 하지만 코치의 시선에선 아직 부족한 부분들도 보여요. 부상 중인 자원도 많고요. 코치로서 이전보다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자는 일념이죠.
첫 대회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즌이 시작됐는데, 두 사람의 올해 목표와 포부를 밝혀주세요.
형찬 앞선 질문처럼 많은 분이 우리 학교 성적을 기대하는 걸 알고 있어요. 전국대회 우승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엄 코치 저 또한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커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4강에 목표를 두고 있어요. 4강에 올라 기회가 된다면 1위까지도 노려보려고 해요.
#예정된 야구의 길
여러 스포츠를 경험하다 야구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형찬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야구를 하셨으니 저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어요. 다른 스포츠를 경험하더라도 야구는 가장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어요. 야구장도 많이 갔었고 가장 재미있었어요. (어떤 종목을 또 해봤나요?) 정말 다양하게 했어요. 농구랑 수영도 했고, 태권도와 축구를 가장 오래 했어요. 태권도는 2품까지 땄죠.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나요?
엄 코치 어려서부터 굉장히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운동신경도 있었고요. 야구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 첫 번째였지만, 다른 종목이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을 한다면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래도 결국엔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됐네요.
엄 코치 사실 시작은 축구였어요. 야구에서도 풋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엔 축구로 단련시키려고 했어요. 4학년부터는 야구를 권유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복안이 있었네요.) 바라던 길을 걷게 됐죠.
롤 모델로 강민호, 양의지를 꼽았어요. 이유는요?
형찬 경험도 많고 플레이가 여유로운 선배님들이에요. 여유가 있다는 건 자기 플레이에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니까 그런 부분을 닮고 싶어요.
엄 코치 형찬이가 강민호, 양의지 선수도 닮고 싶어 하지만, 메이저리그 포수들도 좋아해요. 메이저리그를 자주 보기도 하고요.
MLB에선 누구를 눈여겨보나요?
형찬 한 명을 고를 수 없이 전체적으로 좋아해요. 대표적으로 야디어 몰리나나 살바도르 페레즈 같은 포수를 존경하고 있어요.
원주고 김건희 등과 함께 고교 포수 최대어로 꼽히고 있어요. 라이벌 의식은 없을까요?
형찬 당연히 있었어요. 주변에서 라이벌로 묶어 언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경 쓰이더라고요. 최근엔 다른 누군가를 의식하기보다는 제가 할 것에 몰두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좋은 성적이 따라오지 않을까요?
선수로서 본인의 강점을 어필해볼까요?
형찬 어깨가 좋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덕에 포수만 아는 디테일한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블로킹이나 경기를 읽는 능력 또한 강점이에요. (타자로서는요?) 타격에서는 공을 잘 맞힌다고 생각해요.
매 순간 아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볼 텐데요. 아버지가 아닌 코치로서 어떤 생각을 하나요?
엄 코치 저는 항상 잘 안되는 것만 보여요. 잘하는 부분은 흘려보내게 되죠. 그런데 최근에 이마트배가 끝나고 타 학교 포수 영상을 볼 기회가 생겼어요. 고교야구에서 두각을 보이는 포수들의 모습이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아들이 괜찮게 한다고 처음 느꼈죠. (어떤 점이 괜찮았나요?) 전반적으로 송구나 블로킹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 이해를 잘하고 있어요. 지금도 괜찮지만, 그래서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나 함께
비시즌에는 부자가 함께 여가를 즐기기도 하나요?
엄 코치 우리 가족이 영화 보는 걸 즐겨서 자주 보러 가요. 히어로물 같은 장르도 빼먹지 않아요. (마블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마블 세계관은 전부 이해하고 있습니다.
형찬 제가 계속 설명해요. 같이 봐야 하니까요.
같이 즐기는 또 다른 활동도 있나요?
엄 코치 원래 음악을 다양하게 찾아 듣는 스타일이에요. 팝송, 재즈 등 가리지 않고 들어요. 자연스럽게 이런 성향을 닮았어요. 최근에는 힙합 음악에도 관심이 가서 ‘쇼미더머니’도 함께 시청했어요.
형찬 쇼미더머니뿐 아니라 형이랑 아버지, 저까지 셋이 앉아서 손흥민 경기도 보곤 해요.
쇼미더머니를 보며 같이 응원했던 래퍼도 있었나요?
형찬 한 래퍼를 응원하기보다는 모든 무대를 즐겁게 봤어요.
엄 코치 아티스트의 스타성을 보는 눈이 있는 편이에요. 이번 출연자 중엔 비오가 뜨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적중했죠.
형찬 이미 어느 정도 뜨고 나서야 ‘누가 잘 될 줄 알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엄 코치 이렇게 투덕거리며 얘기를 자주 나누곤 합니다. (하하)
서로가 생각하기에 닮은 면이 있나요?
엄 코치 성격부터 시작해서 거의 판박이예요.
형찬 학교에서 집까지 스케줄이 항상 똑같아서 그런지 정말 많이 닮아가요.
서로가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형찬 아버지가 팀 집합 시에 명언을 들려주시곤 해요. 그럴 때 멋있어요. (기억에 남는 명언은요?) “장벽은 장벽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을 걸러내는 도구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어요. 엄청나게 와닿는 말이었어요.
엄 코치 늘 자랑스러워요. 야구에 대한 열정이 놀라워요. 저는 한창 운동할 때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하지만 형찬이는 지치지 않고 일관적인 열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럴 때가 특히 자랑스럽죠.
각자 선수와 지도자로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요?
형찬 현재로서는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엄 코치 고등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흔히 프로 진출 혹은 대학 진학을 해내야 성공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러지 못했을 시 좌절감도 크게 느끼고요. 하지만 실패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높은 자존감과 긍정적인 태도가 있다면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지도자가 되려고 해요.
선수와 코치가 아닌 아들과 아버지로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부탁합니다.
형찬 이제 3학년 생활도 오래 남지 않았어요.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할게요.
엄 코치 잘해도 내 아들이고, 못 해도 내 아들이다. 많이 사랑한다.
***
“서로의 눈빛이 선처럼 이어지던 자리에는 굳이 점을 찍지 않아도 맺어지는 말들이 있었다.” 박지용 작가의 시집 ‘점을 찍지 않아도 맺어지는 말들’의 인용구다. 두 사람과 함께한 자리야말로 이 구절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마음을 열고 선수로서의 고충을 이해하고자 하는 아버지와 그 진심을 알고 따르는 아들. 서로를 아끼는 눈빛이 선처럼 이어지며 빛나는 자리였다. 흙먼지 나는 그라운드에서부터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집 안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특별한 애정은 인터뷰를 진행한 에디터마저 따스하게 감쌌다. 두 사람의 온정과 야구가 앞으로도 끝없는 선처럼 이어져 나가길 소망한다.
▲ 더그아웃 매거진 133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3호 (5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